[에세이-봄비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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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래와희망 작성일2010-03-09 조회4,667회본문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올 겨울이 끝나가나 싶었더니 산수유 꽃망울 터진 나무위로 다시 차가운 비가 쏟아집니다. 북간도위의 찬공기가 태백산맥을 따라 그칠 줄 모르고 눈을 뿌려대니 고립된 마을이 생기고,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야채며, 과일이며 생필품 가격이 마구마구 올라가고 있다니 이도 참 안된 일입니다.
그래도 남도라서 부슬비 정도로 끝나준다면 좋은 일이겠지요.
광주에 와서 개원을 한 지 벌써(?) 4년이 되어 갑니다.
첫 한 달을 잊을 수가 없네요.
개원한 첫 날은 한 분의 환자가 오셨고, 다음날은 제약회사 직원들만 몇 명 오고 환자는 아예 없었지요. 인내심이 필요한 날들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해 말씀드리고 치료과정에 대해서도 불편함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4년후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또한 정말 많은 분들이 원하는 임신을 해서 떠나가셨습니다.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은 이유는 저와 적지 않은 시간을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의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믿어주고, 끝까지 따라주신 점에 감사드리고, 다시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먼 곳에 사시더라도 홈페이지에 소식 한자 정도는 남겨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지는 이유도 인간적인 유대관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멀리 미국에서 여기까지 시험관아기시술 때문에 와서 4번만에 성공하고, 17주가 되어 떠나신 분이 진료실을 나서기 전에 악수를 청하시더군요.
이심전심이라고 하나요?
시원섭섭한 마음이 전해 왔습니다 .
그래도 일년넘게 하루가 멀다하고 와서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하고, 기다리고 마음 아파하고, 다시 용기를 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남아 진한 아쉬움으로 배어나오는 것을 저도 느꼈답니다. 그래서 보람도 많지만 떠나보내는 마음아픈 일들도 겪어야 하는 병원에서 오늘도 저는 다른 인연을 기다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오래된 인연의 끈을 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같이 일하던 여자원장님이 대학병원에 자리가 나서 퇴사를 갑자기 하는 통에 다른 선생님을 구하기 어려워 다시 혼자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오랫동안 상담도 하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하는 시간이 부족해짐을 느낍니다. 게다가 수술이나 시술, 상담, 진료, 검사 결과 전화, 홈페이지 답변까지 일들이 쌓이다보니 피곤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답니다. 그래서 행여 제가 변한 것은 아닌지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결코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병원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이 각각 절박하고, 절실한 심정에서 어렵게 선택한 병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전처럼 해드리기는 쉽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 무엇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누군가 흔들어 깨워준다는 것이다.
잠든 마음은 의식이 깨우다.
누군가 흘들어 깨워 의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그리움은 누군가를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누군가를 가치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이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곧 당신이 된다는 것이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 봄 비가 내리고 햇살이 보다 따뜻해 지면 옷장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봄 옷들을 꺼내입고 외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산들부는 바람이 콧 등을 스치고, 아지랑이 피는 언덕에 민들레 춤추는 봄이 오면, 그 길을 유모차를 밀고 가볍게 걸어가는 님을 그려봅니다.
뒷모습이 언덕을 넘어 사라질 때까지 제 얼굴의 미소는 남아있겠지요.
그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해 오늘도 힘을 내어 봅니다.
저희병원에서 저와 함께 힘들고 어렵고 눈물나는 긴 여행을 하고 계신 모든 부부들에게 하루 빨리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봄 날이 왔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하기에.....
광주 미래와희망 산부인과 원장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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