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비 오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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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래와희망 작성일2018-05-08 조회2,259회본문
비가 내리는 새벽입니다.
집 앞 산하를 감고 도는 안개 사이로 투닥이며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비가 옵니다.
베란다 커다란 창밖으로 구름은 이리저리 흐르고, 잿빛 구름들 아래 어둑어둑한 공기가 서늘하게 깔리는 4월의 어느 날.
생각을 해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을 겪으며, 다들 정신의 피폐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절감하며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다들 슬픔 한 스푼을 더 새까만 커피에 타서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테지요.
그러다보니 무료함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기다림은 고통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설레임입니다.
이 차이는 불확실성에 기초합니다.
스무 살 대학 일학년 새내기 때 다들 미팅이란 것을 합니다.
맘에 든 아가씨와 1980년대 말에 만나기로 한다는 것은 전자를 의미합니다.
일단 핸드폰이나 페이져 등이 없으니 약속은 장소와 시간에 기반합니다.
모든 공공시설, 대학교 정, 후문, 유명한 서점, 우체국, 백화점 앞에는 그래서 공중전화가 수십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화들은 무용지물일 때가 많습니다.
나오지 않는 아가씨를 기다리며 수 많은 생각을 합니다.
‘싫어서 나오지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시간을 잘못 알아들었을까?’
심지어는 오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확인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섭고 공포스러운 방법인지라 사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차였을수도 있다는 극단의 절망감이 뇌리에 스치면 마지막 방법을 꺼냅니다.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전화를 부탁하는 것이죠.
두어 번의 거절 후에는 꼭 대신 전화를 걸어주는 착한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엄청난 연기력(?)에 깜짝 놀라는 순간, 나는 수화기 속의 아가씨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토요일 6시에 어딜 가냐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나가기 어렵고, 다음주 점심 때 보자는 아주 짧은 이야기로 통화는 끝이 나고, 절망과 불확실성의 늪에서 마침내 불굴의 의지(?)로 탈출합니다.
똑같은 상황이 요즘의 삶속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겠지요.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휴대폰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종류의 불확실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는, 즉 초연결사회에서는 소외의 공포나 혼자만의 일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이 진하게 배어납니다.
그래서 확실한 것이 다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가의 위대한 스님 들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사유를 깊게 하지 말고, 그냥 할 뿐!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뿐이니.....“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상정해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다른 생각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의 마음속의 나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주었을 말과 행동을 어떻게 희석할지 고민할 때, 상대방은 전혀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 사유행위는 사실 스스로를 가장 괴롭히는 방어기제 중 하나입니다. 이런 식의 습관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자신에게 향하는 화살 시위를 당기는 것과 다를게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 은 불가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합니다.
beyond, more ~, valuable 따위의 좋은 단어들을 제치고 'just'란 단어를 쓰다니.....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그냥 해!", "일단 해봐”, “그냥 할 뿐” 정도 아닐까?
이 슬로건을 사용후 나이키의 매출이 45%이상 급증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서 헤매고, 다양하지 못한 사유의 틀 속에서 갇혀있는 우리들은 하나의 이벤트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없으니 매사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정말 제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것 정도인데, 오늘 이제 비는 멈추고, 차들은 도로를 달리고, 일상은 그렇게 또 흘러갑니다.
오늘 하루는 많은 생각이 필요없고, 별 다른 자극을 수용할 필요 없이, 물 흐르듯 지나갔으면 합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서 삶이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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