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믿음과 정성이 만드는 기적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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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래와희망 작성일2012-11-15 조회4,506회본문
2012년에 본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건축학개론'
뭐 그저그런 청춘물이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한 이후 전 많은 상념과 생각에 빠졌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슴아픈 첫사랑이 있을 수 있지만 어긋나고, 헤어지고,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져버린 나이가 되면
문득 그 시절이 그리 오래된 시간들이 아님을 느낍니다.
그저 휙하고 지나가버린 느낌이랄까요?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정말 지나가버린 또 많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인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십수년이 지나 등장한 그녀가 남자에게 한 한마디
'아련하다'
설레고, 눈물나고, 아쉽고, 허망했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실제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추억의 편린들이 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머리속에 부유하는 순간.
되돌이킬 수 없음에 절망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추억이 있음도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사랑은 바로 눈앞에 현재 지금 존재하는 상대방과의 감정입니다.
이루어지지 못함이 더 아쉬울 수는 있지만 그래서 영화제목이 '건축학개론'일 것 같기도 합니다.
각론에 들어가면 그저 사랑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과 만나게 되니까요.
청춘의 사랑은 그래서 바람과 같습니다.
수용돌이치고, 낮게 흔들리고, 이내 사라져버리는 봄 날 오후의 바람말입니다.
그 바람을 잡을 수는 없지만 그 느낌은 내내 오래가겠지요.
우리에게 놓여진 난제는 오늘 이루지 못한 것들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과 거북함입니다.
이것이 구직일 수도 있고, 오해로 인한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부부간의 다툼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건 불편한 것은 사소할 수록 부부간을 힘들게 합니다.
정말 큰 위협이나 고통은 부부를 합심하게 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대개 서로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왤까요?
세상에 태어나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은 무엇이던,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때로는 엉뚱한 것일지라도 이해받고, 위로받고, 위안받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소함이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되지요.
광고카피에 '로맨스는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의료비에 주거비에 체면유지비에 치어살게 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돈은 갑절로 들어가지요.
부모가 두배로 늘어나니 경조사도 그만큼 늘고 챙겨야 할 식구들도 늘어나고, 싫든 좋든 만나서 부대끼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웃고 즐거워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건축학개론의 삶을 지나 각론의 현실을 어렵게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부부들에게 과연 평온하고 무료한 일상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 지 궁금합니다.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너무 흔드는 것들이 많아 불혹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삼십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평온이라는 단어는 너무 사치스러운 감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임신이 되지 않는 분들을 만나 걱정과 한숨과 눈물과 ...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생기는 불안함을 듣고,
느끼고, 되새기다 보니 정말 세상사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병원에 내원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사소한 것들로 싸운다고 했지요.
이 분들도 그랬습니다. 병원을 가네, 마네로 한바탕 하고 온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무어 즐거워 여기를 오겠습니까?
검사를 마치고, 여자분만 다시 진료실에 앉았습니다.
글썽이는 눈물로 한 한마디가 가슴에 내려앉더군요.
"저는 남편에게 산모수첩 한 번 쥐어주는 게 소원인데 밖에는 그런 분들이 여럿 지나가네요"
어린 시절 결핵으로 결핵성난관염에 걸려 양쪽 난관이 폐쇄되었고, 수술적 교정도 되지 않아 서울에 있는 유명한 불임병원을 수없이 다니고
시험관아기시술도 여러 번 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모은 돈은 다 써버리고, 시댁에 간지도 오래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될 지 몰랐고, 웨딩부케를 던지던 순간을 원망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조절할 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중 가슴아픈 일들을 미리 피해갈 수는 더더군다나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고, 시간이 가면 희노애락 중 아플 애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도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존감이 없는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 가장 무서운 병이지요.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결실의 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지요.
그 고통과 불안이 영원할까봐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불안에서 빠져나올 때입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을 찾으면 평온함이 찾아오지요."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란 시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기를 갖는 일은 고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한 분이 임신을 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자궁이 둘로 나뉜 기형을 가지고 있는 분인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었을 지 감히 가늠이
가질 않습니다.
수치가 200정도로 아주 높게 나왔습니다.
세번째 이식만에 성공인데, 제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 남편도, 부모도 아닌데 밑도끝도 없이 막연한 시도와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저를 찾아와 주신 점이 감사한 것이지요.
혈액검사를 하는 새벽 세시에 일어나 잠도 못자고 불안감에 떨다가 병원에 와서 피를 뽑고 기다리는 한 시간.
사람을 잡는다라는 표현이 딱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과 정성이 모여 오늘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작은 기적들이 하루 하루 제 앞에서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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