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희망 산부인과

병원안내Hospital Information

Customer고객센터

062-361-3344

월화수금
AM 08:30 ~ PM 05:00

목토
AM 08:30 ~ PM 12:30
점심시간
AM 12:30 ~ PM 02:00 (목,토는 점심시간 없이 진료)

일요일/공휴일은 휴진,
자세한 휴진일정은 진료안내 참조

공지사항 Notice

공지사항

에세이-아기를 바라는 당신이 꼭 읽어야할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래와희망 작성일2016-01-26 조회4,002회

본문

우리는 오늘도 많은 꿈들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 3월호에 실린 4컷 만화속에서도 작가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7살 무렵의 당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떠오르나요?
즐거웠던 기억, 배 고팠던 기억, 아련한 기억속의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살던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
15살 때는 어떠했을까요?
이사오기 전날 친구와의 슬픈 이별, 친구들과 영화관에 갔던 기억, 유명했던 팝송과..... 이승환의 노래.
성장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새로 만나고, 또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곤 합니다.

다 담고갈 수는 애당초 없었으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이 삶이겠지요.
그리고 오늘, 바라는 아가를 위해 하루 하루 심장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과 초조함 속에서도 병원을 찾는 당신의 일상을 생각해보세요.
의지와 인내가 바닥나고, 절망과 체념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올 때, 그 때가 바로 꿈에 대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때라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의 꿈을 바라볼 때,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도를 할 때 인내가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인내인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육군 공병대에는 이런 슬로건이 있습니다.
-- 어려운 일은 우리가 즉시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인내에 관한 이야기 중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감명 깊은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의
산타아나에 있는 맹인협회의 회장인 빌헬름 드네 박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박사님 덕택에 수십명의 맹인들이 길고 흰 지팡이를 짚고 혼자서 길을 찾아 다니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살고자 하는 용기도 되찾고 있습니다. 내 친구인
빌헬름 드네의 격려와 도움을 받고서!
" 전기 기술자이던 사람이 장님이 되어서도 어떻게 하면 자기 직업을 계속하면서 눈
뜬 사람들과 경쟁해 나갈 수 있는가를 자네는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그게
가능할까?" 내가 의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믿음과 용기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은 없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어떤 눈먼 전기 기술자가 센터에 와서 새로 건축하는 집에
전선을 배치하는 법을 어떻게 배워가지고 그의 직업을 계속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눈먼 사람은 검은 전선과 흰 전선을 식별하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이 두 빛깔의 전신줄은 수송하기 위해서 상자에 감아 넣을 때 다른 방법으로 감아
넣습니다. 이 비결에서 출발하여 그는 천천히 그리고 끈기 있게 자신을 되찾아서
오늘날에는 눈 뜬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빠르고 능률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드네 박사는 수백 명의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습니다. 그 자신도 아주 약한 한 부분의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도 아주 약한 한 부분의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려웠던 경험을 통해서 인내의 가치를 배운 사람입니다. 드네 박사
부처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었는 데 수카르노가 정전을 잡게 되자, 그들은 도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카르노의 부하 중에는 조금이라도 왕족의 피가 섞인
사람들은 다 죽이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놈들이 당신을
죽이러 오기 전에 떠나셔야 합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충고를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간다면 박사님과 부인이 어두어진 후에 카누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싱가폴까지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박사님의 자동차를 싱가폴까지 부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싱가폴에 무사히 도착하자 빌헬름은 그의 다섯 자녀가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계획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자동차 한 대와 약간의 현금뿐이었습니다. 싱가폴
로터리 클럽의 모임에 와서 인도네시아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갔을 때 그는 네덜란드까지 가려는 그의 계획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템포마티도어라는 독일제 자동차로 네덜란드까지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먹을 것과
기름 값은 가면서 벌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가서 나처럼 시력의 대부분을
잃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연구하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겠습니다" 청중들은 그의 깊은 신앙에서 우러나온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어떤 사람이 미소를 띠고 그에게 다가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쉘 석유 회사의 간부 중
하나입니다. 당신의 용기를 찬양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노란
카아드를 한 장 꺼내어 드네 박사에게 주었습니다. "자 이게 외상 카아드입니다.
당신이 필요한 모든 기름값을 이 카아드에 적으십시오. 그러면 그 청구서는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50 마일만 가면 제대로 된 도로는 끝나 버립니다. 당신
차의 기름 값 청구액이 별로 클 것 같지 않습니다"

드네 부처는 필요한 물건들을 작은 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싣고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부인이 남편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보, 저기 좀
보세요! 더 이상 길이 없어요"그 분 말씀이 옳았다. "공지를 길 삼아 갑시다" 이미
시력의 반은 잃은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겐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지 않소? 자,
갑시다" 차가 덜컹거리며 들판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차 바퀴가 진흙에
빠져 헛 바퀴만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어떻게 하죠?" 부인이 절망적으로
물었습니다.

바로 그 때 호기심이 많은 원주민이 농부들이 바퀴가 진흙속에 빠져 성난 듯이
돌아가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차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어 보려고
사방에서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네덜란드로 가는 도중입니다" 빌헬름은
손가락으로 그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과 진흙에 빠져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차를
가리키면서 소리쳤습니다. 원주민들은 그의 차를 밀고 당기고 해서 간신히 진흙속에서
끄집어 내어 겨우 그의 작은 차가 지나갈 만큼 넓은 코끼리들이 다니는 단단한
길에까지 밀어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코끼리들이 다니는 오솔길과 도로---도로가 나올
때는---를 따라서 천천히 말레이 반도로 올라갔습니다.

" 다리가 없는 강도 여러 번 건넜습니다" 드네 박사는 물의 깊이를 어림해 보고 그가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물이면 차를 몰아 건넜고, 물이 너무 깊을 때에는 차의
엔진을 뜯어내어 차의 지붕에 싣고 아내와 차를 밀어서 건너곤 했습니다. 때때로
정글을 빠져 나가려고 애쓰는 이 두 사람의 외국인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 곳
사람들이 뗏목을 만들어 차를 실어 건네 준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명한
스틸웰 도로까지만 가면 그 다음에는 가기가 좀 수월해지리라고 생각하면서 그 도로를
향해 꾸준히 갔습니다. 그러나 그 도로에도 바위가 굴러 내려와 있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오랫동안 차가 다닌 일이 없어 거의 지나 갈 수가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그들은 길 위에 흩어져 있는 것들과 덤불을 치우는 등 최선을 다하여 용감하게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파키스탄 국경에 닿았고 끈기있게 동파키스탄을
지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데 그 곳에서는 밤이 되면 모든것이 다
얼어붙었습니다. "밤에는 차의 냉각기에 들어 있는 물을 빼고 아침에는 물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소" 빌헬름은 부인에게 설명했습니다.그들은 이 일을 여러 날 밤
되풀이했습니다.

이란과 이락을 지나서 시리아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곳 경비원들은 드네
부처의 서류가 시리아 정부의 요구 사항에 충분치 못하다해서 그들의 입국을
거절했습니다.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 때까지 고생하며 온 여행의
종착역인가? 마음을 굳게 먹고 두 사람은 차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차 안으로 머리를 들여 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내일이나 모레쯤 아니면 며칠 후에라도 모래
폭풍우가 불어 올 것입니다. 설혹 본다고 하더라도 자기네 목숨을 걸고 쫓아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모래 폭풍우에 붙잡히면 낙타도 죽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차 속에서 끈기있게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래가 이슬비같이 길 위에 슬슬 불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비
같던 것이 가랑비로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약하게 그러나 점점 세차게 사막의 바람이
몰아쳐 오기 시작하더니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맹렬한 기세로 폭풍우가 불어
왔습니다. 국경 경비원들은 자기네의 초소로 후퇴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경비
초소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앞의 10 피트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차에 발동을 걸어서 시리아 국경을 가로질러 똑바로 갔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상관치 않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상당히 들어왔다고 느껴질 때까지
계속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폭풍우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라고 드네는 회상하고 있습니다. "빌헬름, 길이 어디로 갔죠?" 마리안카가 물었습니다.
" 없어졌어요. 모래 밑에 묻혀 버렸소" 그들은 폭풍우에 붙잡히어 죽은 낙타들의 다리가
모래 위로 솟아 나온 것을 도로 표지로 삼고 사막을 건넜습니다. 빌헬름은 나에게
독수리에게 뜯어 먹힌 낙타의 뼈만 남은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막을 다 건너기 전에 물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안 남은

극소량의 물을 하루에 두 서너 모금씩 나누어 마시면서 14 일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마침내 어떤 오아시스에 다달았을 때 드네는 얼굴을 씻다가 물맛이 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의 냉각기에서 더럽기는 하나 먹을 수는 있는 물을 빼
내어 먹고 냉각기에는 그 오아시스의 쓴 물을 넣었습니다.
일단 사막을 건넌 그들은 터어키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 보스포러스를 지나
불가리아를 건너 유고슬라비아로 들어갔습니다. 이 곳에서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좁은 길에서 드네가 차를 잘못 운전하여 차가 뒤집히면서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차만 조금 부서졌었지요" 하고
그는 웃으면서 설명했습니다. 차를 고쳐 가지고 그들은 7 일 후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차의 문은 전선에 묶이어 간신히 달려 있었고 그들이 오스트리아 쪽에
있는 알프스산을 오르자 엔진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알프스를
넘어서니 그들 앞에는 독일의 아름답고 푸른 언덕과 계곡이 펼쳐졌습니다. 바로 그
곳에서 지금은 만신창이의 고물이 되어버린 그들의 자동차가 3 년 전에
만들어졌었습니다. 공장장은 드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그가 도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는 너무 감격해서 그의 자동차를 무료로 수선해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쾌속하게 달려 그립던 자녀들의 팔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여섯 달 동안 사막과 정글을 지나 다리도 없는
수많은 강을 건너 2 만 마일의 여행 끝에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먼 거리를 그렇게 여러 달 동안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우리는 주님을 꼭 믿었습니다" 하고 드네 씨는 빛나는 얼굴로 오늘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인내심과 믿음만 있으면 아무것도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몇 달이 지나가고 몇 해가 지나가더라도 우리들은 겉보기에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들이라 할지라도 그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전화를 통해 임신 소식을 듣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저의 전화를 받았던 분들께 이 글을 전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그러시더군요
원장님이 거의 될 듯하게 말해놓구서 왜 임신이 안되느냐?
희망을 말하지 않는 불임 의사에게 스스로를 맡길 환자는 없을 것 입니다.
그 희망이 결실로 현실화되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이제 2월도 하순으로 접어드는 20일입니다.
새 해가 시작되었나 했더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가네요.
모두들 힘 내시고, 바라는 목표, 원하는 아가를 올 해엔 꼭 만나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pilogue
제 9살때에는 한일극장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100원이면 영화를 두어편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나네요.
지금이면야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영화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신나게 만화영화를 보고 들어간 저는 어머니에게 그 응당한 댓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두 시간 동안 저를 기다린 어머니의 화난 얼굴이 오늘 떠오르네요.
그래도 이젠 가물거리는 제 머리속 어딘가에 추억으로 남은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이야깁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