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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불임 부부 이야기 2-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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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불임증, 임신 | 2006/06/16 (금) 18:26 공감 (0) 스크랩 (0) 수정 삭제





바람이 심하게 불던 겨울 초입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오전 외래만 보고 오후에는 외래가 없었던 나는 점심시간을 넘겨 환자를 보고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간호사의 실수인지 환자 한 분이 접수를 했다.
딱히 약속도 없었던 터라 환자를 보기로 하고 이름을 호명했다.
노영희(가명)씨는 39세로 약간 통통한 몸매에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두 눈을 보면서 많은 사연과 힘든 세월의 고통이 느껴졌다.


노영희씨는 22세에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낳았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사람 좋고, 늘 아이들을 챙겨주는 자상한 남자였다.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저녁에 모여 앉은 가족들의 웃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던 평화가 무참히 깨진 것은 5년 전 이 무렵의 장마가 쏟아지던 밤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남편은 새로 구입한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워 큰 애가 다니던 중학교에 마중을 가다가 그만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하여 둘째와 셋째를 잃었다. 남편 역시 크게 다쳐서 일 년여를 병상에서 보내고 퇴원을 했지만 남은 것은 치료비와 성치 않은 몸, 그리고 가버린 두 자식들 뿐......


큰 애는 그 때부터 동생들을 그리워하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했고, 남편과 노영희씨는 맞벌이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어 남은 자식 하나마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현실 속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악순환. 결국 큰 애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누군들 가슴속에 말 못할 사연들 하나쯤은 가지고 가는 것 아니겠는가하지만 노영희씨의 이야기는 있어서는 안 될 너무도 많은 비극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얽혀있는 고통 그 자체였다.


의사인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왜 그녀는 나를 찾아왔을까?
아니, 왜 불임의사를 만나러 왔을까?


나는 깨달았다. 이 비극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그녀인 것을.
사고 후 울고 슬퍼할 사이도 없이 남편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녀는 동분서주 했을 것이다. 밤을 지새워 간호를 하고,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남아있는 아이의 밥을 해주고, 지인들과 친척들을 찾아 다녔을 것이리라.


그녀는 아이를 원했다.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큰 죄책감속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더 낳아 그 죄를 씻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 한자락이라도 편안해 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에 난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경제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약이나 주사를 최소화하여 투여하는 연자극법을 이용해 과배란유도를 했고, 직장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정해 아침일찍이나 , 점심시간으로 예약을 해서 초음파를 보고 배아이식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치료는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이었다. 그 많은 세월동안의 죄책감과 초조함이 사라진 고요한 바다와 같은 평온함. 이 것이 선결되지 않으면 시술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대화를 통해 나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던 한마디를 깨닫기를 바랬다.


외면하지 말고 맞서야 된다는 것. 고립되지 말고 삶에 당당해 져야 된다는 것. 그리 함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자책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진정 평온해 진다는 것을 설득했다.
지난 2년 간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충분히 최선을 다한 것이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자신과 똑닮은 심성과 사랑으로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비춰줄 아기를 만나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그 것은 과욕이 아니라 누구나 바라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이식후 첫 피검사를 하던 날 첫 눈이 왔다. 하얀 눈 속의 도시. 세상은 나 하나의 고통따윈 상관없는 듯 돌아가고 있고, 계절은 바뀌고,눈은 내리지만 그래도 삶은 항상 배려해주고, 위로를 해주고, 기도를 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 따스하다.
전홥벨이 울리고 수치가 불려지던 시간.
나는 진정으로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눈가에 촉촉이 젖어오는 것은 다만 기쁨의 눈물만이 아니라 세상이란 그래도 살아볼만한 것이라 느끼게 해주려고 제 엄마의 뱃속에 자리를 잡은 넷째 아기의 숨결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불행은 없어야 한다. 살아볼려고, 착하게 아름답게 열심히 살아 보려는 사람들에게 이제 더 이상의 불행은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하기에 말이다.


지금 넷째 아이는 만 3살이 됐다.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그 아이일 것이다.
엄마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부모의 심성을 닮아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테니 말이다.
광주 미래와희망 산부인과 원장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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